『에덴의 용』마지막 장_돌아온 파충류_미드 브이(V)_포유류 VS 파충류

『 에덴의 용 』의 마지막 장을 읽고 시간이 좀 지났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더라도 쉽게 내놓기가 어려웠다.

”인생의 책”라고 할까.그동안 책을 통해서 마음의 치유를 받기도 했다, 자기 자신을 반성하거나 때에는 학구열을 불 태운 적이 있었는데, 특히”인생 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었다.

”칼·세이건”는 천재 과학자가 이 책을 어떤 목적으로 썼는지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힐링 에세이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힘들었던 시절에 만난 것이기 때문일까.책을 읽으면서 문득 생각했다.

”어쩐지 이 책을 읽기 전의 저와 읽은 후 저는 조금은 바뀌는 것 같다”뇌에 대해서 내가 근본적으로 전제로 한 것은 가끔 우리가 “마음(mind)”라고 부르는 뇌의 작용이 뇌의 해부학적. 생리학적 특성을 반영하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마음”은 뇌의 각 요소의 개별 활동 또는 통합된 활동의 결과라고 할 것이다.

심적 절차의 일부는 뇌 전체의 기능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주제에 대해서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은 자신들이 고차원적 뇌 기능이 일어나는 장소를 정확히 식별 못했다는 이유로 미래의 새로운 세대의 신경 해부학자들 역시 그 같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증거의 부재”이 “부재의 증거”이 될 수는 없다.

칼·세이건”에덴의 용”

마음을 스스로 억제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내 자신의 나약함 때문이겠지 하는 생각에 힘들었던 적도 많았다.

그러나 마음은 뇌의 해부학적 생리학적 특성일 뿐이다.

내 잘못이 아니야.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위로를 주는 이야기는 처음이다.

책을 깨물고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1980년대 미국 드라마 ‘브이’로 대한민국이 흔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의 모습을 한 파충류 외계인이 지구를 습격하고 과학자들이 중심이 된 지구인들이 파충류에 맞서 싸운다는 얘기다.

충격적인 장면을 선보인 파충류 다이애나는 악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끌었다.

어렸던 나 역시 설레는 마음으로 ‘브이’라는 드라마를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는 지구인과의 친선을 가장한 파충류 우주인이 지구에 침입하면서 시작된다.

파충류는 지구를 식민화하고 인간을 먹이로 하는 지구의 물을 가지고 나가기 위해서 지구에 왔다.

이 과정에서 기자 출신의 “도노반”과 아름다운 과학자”줄리”에 의해서 파충류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지구인들은 지구를 지키기 위한 게릴라전에 돌입한다.

결국, 파충류에 취약한 가루 형태의 물질을 만드는 파충류가 쫓겨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현재의 바이러스 상황을 생각하면 이 부분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지금 생각하면 지구의 승자인 미국이 약자가 되어 외계에서 온 파충류를 상대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 있었다.

파충류를 상대로 어설프게 게릴라전을 벌이는 모습에서 일본을 상대로 고군분투했던 조선 독립군의 모습이 떠올랐다.

“너희들도 한번 당하고 본다”라는 기분이랄까?『 에덴의 용 』을 읽으면서 이 드라마가 생각 났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먼 옛날의 지구는 파충류가 지배하고 있었다.

파충류가 지배하던 시기에 처음 등장한 포유류가 파충류의 세상에서 느꼈던 공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때의 기억이 우리 뇌의 깊은 곳에 남아 있으며 우리는 지금도 뱀을 연상시키는 “쉿!
”소리만 들어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지구를 지배하던 무서운 파충류에도 약점은 있었다.

바로”변온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밤이 되면 체온이 떨어지고 운신이 여의치 않아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포유류는 이 틈바구니에서 들어 밤을 활동 무대로 했다.

한낮에는 파충류가 밤에는 포유류가 횡행하고 번갈아 잠 자는 상황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작은 포유류이지만, 옴짝달싹 못하는 밤의 파충류에는 위험한 존재였을 것이다.

특히 파충류의 알의 경우는 더욱 새로웠을 것이다.

깨어나지 못한 채 죽어 가파충류가 점점 늘어난 것이다.

포유류에 비해서 파충류는 자신의 알을 그리 소중히 하지 않는다.

그것이 포유류가 파충류에 이길 수 있었다 최대의 이유 아닌가? 포유류 중에서도 인간처럼 유년 시절이 긴 동물은 없다.

긴 유년기의 양육의 고통이 있지만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학습하는 많은 부분에 의해서 인간은 그 후의 인생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

두 강의 부피로부터 판단하면, 공룡은 포유류에 비해서 매우 어리석은 동물이다.

그렇게 작은 뇌에서 큰 몸을 제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파충류와 포유류의 먹는 무서운 전쟁이 끝난 뒤 지구에서 파충류는 그 모습을 지우다.

파충류에 비해서 무게 대비 뇌의 부피가 큰 포유류가 지구의 승자가 된다.

파충류가 사라진 후 포유류는 낮이라는 생태계 속에 들어온다.

영장류가 어둠을 두려워하는 것은 비교적 후에 발달한 특징으로 보고 있다.

파충류가 사라진 영장류에 공포는 단 3개였다.

“추락, 뱀, 어둠”만약 중생대의 파충류와 포유류가 낮과 밤을 나누어 먹는 게임을 했다는 가설이 맞다면 물론 결국 가설은 가설에 불과하지만 수면의 기능은 포유류 뇌에 깊이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포유류가 처음 등장했던 시대로부터 수면은 포유류의 생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이다.

영장류가 밤 안 자것은 밤 섹스를 안 하는 것보다는 분류 군의 생존에 더 위험한 것이다.

잠에 대한 충동은 섹스에 대한 충동보다 강하다.

적어도 우리들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다.

결국, 포유류는 변화한 상황에 의해서 수면 패턴을 변경할 수 있는 상태로 진화했다.

(중략)오늘의 포식자인 포유류는 꿈을 많이 보면서 자고, 먹이가 되는 포유류는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기 위해서 꿈을 꾸지 않는 얕은 잠을 하게 된 것도 그 일환이다.

아마 밤에 2,3시간만 자도 편하게 사는 사람들은 주어진 24시간을 완전히 활용하려는 인간적 적응의 최전선에 있는 개척자들인지도 모른다.

칼·세이건”에덴의 용”

인간의 뇌는 신피질의 추상적 기능과 윤리적 판단 기능을 하기로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인간의 뇌의 부피가 커지면서 신피질이 진화하게 되고, 인간에게는 점점”지능”이라는 게 생기게 된다.

체내의 지능만으로 부족해서 인간은 “문자”라는 외부 지능을 활용한다.

”에덴 동산”에서 아무런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던 인간이 뱀의 유혹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인간은 “인지”다는 것을 하게 된다.

’선악과 “은 아마”인간의 뇌의 진화”을 상징하는 것이다.

파충류를 몰아내면서 포유류는 파충류의 공격적이고 관습적인 역할을 사용했다.

그것이 여전히 우리의 뇌 속”R복합체”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고”창세기”이야기에서 파충류의 유혹은 인간이 동물의 언어를 이해한 유일한 사례다.

우리가 용이 공포를 느낄 때 우리는 자신들의 일부를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 사실로 중요한 것은 에덴 동산에 용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칼·세이건”에덴의 용”

『 에덴의 용 』라는 책 제목에 대해서 여러가지 생각하고 보았다.

“에덴 동산”은 300~400만년 전 인류의 조상이 다른 종과 조화를 이루고 살던 시기에 대한 은유이다.

인간에 “인지”다는 판단 능력을 가져온 것은 파충류의 뱀이다.

“에덴의 용”는 파충류와 다름없던 인간의 것이 아닌가.내가 두려운 건 나 자신 속에 있는 “용”때문이다.

공포는 실체를 모를 때 가장 크게 느껴진다.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공포는 이제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숨막히는 포유류의 잔혹한 전쟁에서 패배한 지구에서 쫓겨난 파충류들이 우주 어딘가에 정착했으나 와신 상담 끝에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인간의 모습을 하고 돌아왔다.

결국 또 지고 돌아갔는데… 그렇긴 혹시 또 오지 않아?

과학자들이 우주를 향해 지구의 정보를 담은 전파를 계속 보내고 있다고 하는데, 그 전파를 다이애나가 받아서는 안 된다.

과학자들이 우주를 향해 지구의 정보를 담은 전파를 계속 보내고 있다고 하는데, 그 전파를 다이애나가 받아서는 안 된다.